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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동네 빵집 페스티벌 앞둔 대한민국 제과 명장 4人
최상의 재료로 정성 다해… 주민과 끈끈한 관계도 강점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4년간 2900여곳 사라졌지만
공장서 냉동차로 배달하는 빵과는 기본적으로 달라… 100년 가는 동네빵집 만들 것

"갓 구운 바게트를 귀에 가져다 대면 깨를 볶는 것처럼 '타다닥' 소리가 나죠." "잘 구워진 것은 색깔이 진한 황금빛 갈색이 나요." "빵을 가로로 잘라서 안에 성긴 구멍이 송송 나있는지 보세요."

탁자 위에 놓인 바게트 하나를 놓고 하얀 위생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 넷에게서 '빵 고르는 노하우'가 술술 흘러나왔다. 정부가 선정한 대한민국에 단 여덟뿐인 '대한민국 제과 명장'. 대한제과협회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동네 빵집 페스티벌'을 나흘 앞둔 18일, 제과 명장 네 명을 서울 성산동의 리치몬드과자점에서 만났다. 이날 자리한 임헌양(73·신라명과 상임고문) 명장, 권상범(67·리치몬드과자점 대표) 명장, 서정웅(63·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 명장, 함상훈(54·함스브로트과자점 대표) 명장은 40~50년 제빵 외길을 걸어온 국내 최고 기술자들이다.

◇"동네 빵집의 살길은 역시 손맛"

명장(名匠) 4명은 "동네 빵집의 살길은 손맛뿐"이라고 강조했다. 매일 새벽 손으로 반죽을 빚어 빵을 노릇노릇 구워내기 때문에, 공장에서 냉동 배달차 타고 온 프랜차이즈 빵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명장들이 일러준 제빵 노하우는 잔기술보다는 하나같이 기본 원칙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7년 경력의 임헌양 명장은 항상 후배들에게 당부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공개했다. "비싸더라도 최상급 재료를 쓰고, 제조 공정을 하나하나 제대로 지키고, 정성을 다해서 만들라는 것입니다." 얼핏 '제빵의 ABC'처럼 들리는 이 조언에 세 명장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권상범 명장은 "질 좋은 경기미로 만든 식어버린 밥과, 일반미로 갓 지은 밥 중 어떤 게 더 맛있겠느냐"며 "재료도 중요하지만 당일 만든 빵은 당일에만 판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당일 남은 빵을 싸게 팔지 않고, 자선단체나 인근 경찰서 등에 기부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동네 빵집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서정웅 명장은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새벽 5시면 일어나 공장을 돌아보고, 제빵 관련 외국 월간지도 꼬박꼬박 받아본다고 했다.
 
40년 넘게 제빵의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제과 명장들이 18일 서울 성산동의 리치몬드 과자점에 모여 동네 빵집이 살아남는 노하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함상훈·서정웅·권상범·임헌양 명장.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지난 4년간 2900여개 동네 빵집 사라져

국내 최고 기술을 가진 명장들도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빠듯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서울 쌍문동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함상훈 명장은 "가게 오른쪽으로 100m, 왼쪽으론 150m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서면서 사실 돈을 잘 못 벌고 있다"면서도 "'명장이 쓰러지면 제빵업계가 다 죽는다'는 생각에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권상범 명장은 최근 서울 홍대 입구에서 30년간 운영해 온 제과점 문을 닫고 대기업 커피 직영점에 자리를 내줬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동네 빵집은 2007년 8034개였다가 매년 감소를 거듭해 작년에는 5184개로 지난 4년간 34%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3489개였던 프랜차이즈 빵집은 5290개로 마침내 동네 빵집 수를 넘어섰다. 동네 빵집의 월평균 매출액도 1554만원으로 프랜차이즈 빵집(4803만원)의 3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동네 빵집 페스티벌'은 동네 빵집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겠다며 준비한 행사다. 직접 만드는 수제빵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별 명품 빵집을 발굴해 알릴 계획이다. 세계 유명 제과·제빵인을 초청해 기술을 배우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100년 가는 동네 빵집 만들자"

제과 명장들은 "동네 빵집은 프랜차이즈에 비해 뛰어난 품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권상범 명장은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오너 셰프(owner chef)가 프랜차이즈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면서 "현재 2대(代)가 이어서 빵을 만들고 있는데 앞으로 100년 가는 빵집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서정웅 명장은 "우리 사회가 명장·기술인을 대우해주고,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줘야 한다"면서 "그래야 모두가 대학에만 매달리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또 다른 제과 명장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19/20120619026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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